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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샤펠의 복음서 -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Ⅰ ①원시미술, ②메소포타미아, ③이집트, ④그리스, ⑤헬레니즘, ⑥로마, ⑦비잔틴, ⑧로나네스크 이전, ⑨로마네스크, ⑩고딕 미술

by write3663 2025.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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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샤펠의 복음서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Ⅰ ①원시미술, ②메소포타미아, ③이집트, ④그리스, ⑤헬레니즘, ⑥로마, ⑦비잔틴, ⑧로나네스크 이전, ⑨로마네스크, ⑩고딕 미술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Ⅰ목차 1.공간 외포(Horror vacui)원시미술(Primitive Art)미술이 어렵다는 당신에게 2. 인류 최초의 문명, 메소포타미아 지배민족이 자주 바뀌어 개방적…문화적 다양성을 가져온다 3. 「영생 불사」의 「정면성의 법칙」이 만든 이집트 미술단지 죽은 자를 위한 예술 영생을 위한 절규를 담는다 4. 그리스 문명 산과 섬으로 구성된 둔한 토지 고대 도시 국가 꽃 피는 5. 헬레니즘 미술 동·서양문화의 만남, 범세계적인 헬레니즘 탄생 6. 로마의 미술 성격과 풍모까지 그린 조각 정원을 옮긴 것 같은 현실적인 벽화, 7. 중세의 시작, 비잔틴 미술 데이시스, 이콘, 모자이크, 성상 파괴 운동 8 중세의 시작, 로마네스크 이전의 예술 중세 천년, 결코 어두운 시기가 아니었다. 9. 로마네스크 미술 인간을 압도하는 장대한 석조 건축 전성기 10. 고딕 미술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첨탑과 화려한 빛의 예술 1, 공간 외포(Horror vacui)원시 미술(Primitive Art) 미술이 어렵다는 당신에게… "내 생각대로 보면 돼요" 원시인이 동굴 벽화를 그린 이유? ①공백 여백·공간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②희망을 형상화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원시미술의 해석에 절대 진리는 없다 후대인들의 상상과 추론만

 

이런 일은 여전히 ​​원시 부족 사이에서 번성합니다. 서인도 제도에서는 지금도 특정인을 저주하기 위해 인형의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찌르는 부두가 번성합니다. 이 신앙은 원시 종교에서 눈에 보이는 대상을 향해 숭배하거나 기도하는 페티시즘과 연결됩니다.

 

다만, 거기에 관련하는 용어를 알고 돌 도끼를 보면서, 왜, 왜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더 재미있고 새로운 가설이 나올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이렇게 내 생각대로 보는 때문이다. 석기시대에 살던 조상들이 스스로 석기시대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1836년 덴마크 톰센(C. J. Thomsen·)은 너무 넓은 선사 시대의 범위를 인류가 사용한 도구의 발전 단계에 따라 석기·청동기·철기 시대로 나뉘었다. 영국의 존 러벅(John Lubbock·)은 석기 시대를 다시 구석기와 신석기로 나누었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시대와 지역과 재료를 중심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는 박물관·미술관에서 유물과 미술품을 분류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고학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가 아는 용어는 더욱 세분화됩니다. 그냥 보지 말고 "왜?"라고 한 번 생각해 보자. 도구도 미술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고고학에서는 도구도 만든다는 의미로 미술 카테고리에 넣는다. 초기 인류는 돌을 데리거나 일부를 부수어 사용했다. 이때를 구석기시대라고 하며, 이 시대석기를 철석기 또는 다른 제석기라고 한다. 또한, 취출한 형태에 따라 격지석기와 석날석기로 나뉘며, 이는 용도에 따라 다시 분리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세분화 된 용어까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미술이란 모두가 모두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알면 되지만, 모르면 내가 무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단지 바라보지 않고 왜?라고 한 번만 생각하면 좋은 것이 미술이기 때문이다. [출처] : 정준모큘레이터/전국립 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1 연재를 시작합니다. 2 인류 최초의 문명, 메소포타미아 지배민족이 자주 바뀌어 개방적…문화적 다양성을 가져온다

 

[출처] : 정준모큘레이터 / 전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2 인류 최초의 문명, 메소포타미아지배민족 빈번히 바뀌어 개방적…문화적 다양성을 가져온다/국방일보, 3 「영생 불사」의 「정면성의 법칙」이 만든 이집트 미술 그냥 죽은 자를 위한 예술 영원한 생명을 위한 절규를 담아 영원불멸 내 세관 수천년이 계속된다 인간의 몸의 형태 영원보존을 위해 흐트러진 모습 옆모습인데 시선·몸통 정면을 향해 시선 흩어지면 몸도 흩어진다고 생각한다

 

고대 이집트 벽화. 지체가 높은 사람은 크고 화려하게, 시종이나 하인은 작게 그리는 존대비소의 원칙을 적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신왕조 시대의 이집트 벽화. 인물의 얼굴은 옆을 향하고 있지만 시선과 몸통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한편 오리의 경우 자연스러운 옆모습을 포함한다.

 

모든 이집트 예술은 이 한 가지 법칙을 따라야 했기 때문에 이 방법은 수천 년 동안 거의 동일하게 유지됩니다.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는 과거의 기법과 스타일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피라미드(Pyramid)와 미라(Mummy), 스핑크스(Sphinx)와 같은 것도 이러한 영원한 불멸이라는 신념에 대한 결과입니다. 다만 벽화에서 보이는 일상은 비교적 리얼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활기 넘치다. 주인공의 모습은 정면성의 법칙을 따라야 했지만 배경은 그리는 사람들의 자유였다. 따라서 종종 일상 생활을 선명하게 그린 것이 발견됩니다. 또 집과 그 안에 사는 사람, 새, 수영장, 신 등은 기하학적으로 디자인한 모습을 가질 수도 있다. 다만 여기서도 지체가 높은 사람은 크고 화려하게, 시종이나 아래 사람들은 작게 그리는 존대비소의 원칙을 지켰다. 어쨌든 이집트 미술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것이었고, 오늘의 미술이 가지는 감상과 장식의 역할이 아니라, 현세와 영원한 생명을 연결하는 충실한 중개자였다. [출처] : 정준 모큘레이터 / 전국립 현대 미술관 학예 연구실장 :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3 영생 불사의 정면성의 법칙이 만든 이집트 미술 그냥 죽은 자를 위한 예술 영생을 위한 절규를 담는다 / 2. 4 그리스 문명 산과 섬으로 구성된 둔한 토지 고대 도시 국가가 피는 기원전 8세기 중엽 개시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중심에 폴리스를 세워 중동과도 교류 45세기 전성기가 된 유럽문화원류 인간의 모습을 담은 신조상 제작 모든 가치에 인간 우선 사고를 담아

 

: 코즈모폴리톤, 간다라 미술,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토스 양식과 콘트라포스트 그리스에서 페르시아, 인도까지 피부 지배 문화의 존중과 새로운 문화의 접목 세속적, 현실적, 일상적인 문명 지향 인간의 격정·다이나믹스 미술품에 표현 그리스 조각, 인칸다 미술로 완성 한국·일본의 건너와 불상 조각에 영향

 

그리고 결국 상반신은 풍부한 가슴을, 하반신은 남성의 상징을 가진 남녀 양성의 자웅동체 헬마프로디테(Hermaphrodite)로 나타났다.

 

6 로마 미술 성격과 풍모까지 그린 조각 정원을 옮긴 것 같은 현실적인 벽화 : 프레스코화, 세코, 모자이크, 스케노그래픽, 컴펜디아리아,

 

이러한 엄청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그들은 분권과 자치라는 알렉산더의 전례를 따랐다. 대제국이 된 로마는 막대한 부를 가져오고,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신화 시대부터 종교 시대에 위치한다. 반죽을 말리기 전에 바르는 프레스코 벽화 로마의 회화는 현재도 발굴되고 있다. 석고를 바르고 말리기 전에 착색하고 건조하면서 색이 부착하는 프레스코(Fresco)가 벽화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마른 회벽에 석회수에 그림을 그려 그리는 세코 기술도 사용되었다. 또 원화 위에 돌이나 유리, 색깔이 있는 대리석, 타일 같은 것을 모르타르나 석회, 시멘트로 고정해 그림을 완성하는 모자이크(Mosaic)가 크게 이루어졌다. 이것은 최근 디지털 사진에서 볼 수있는 픽셀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원근법 스케노그래피 로마 시대의 그림은 눈사람 대화(Trompelœil)를 시도했다. 공간은 마치 무대에서 소실점을 통해 깊이감을 느끼는 듯 눈을 속이는 스케노그래피(Scaenographia)라는 고대 원근법을 사용했다. 버서리가 ‘감심적인 사기’라고 불린 15세기에 지어진 산 사티로 대성당(Chiesa di Santa Maria presso San Satiro)의 제단 뒤의 벽을 착시 현상을 이용해 마치 깊은 공간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 것도 실은 이런 고대 원근법을 또한 인상파처럼 생략하면서 빠른 필적으로 그려내는 컴펜디아리아(Compendiaria)라는 기법이 활발해져 분위기 중심의 그림으로 변화해 갔다. 폼페이의 벽화가 공상적이고 신화적·헬레니즘적인 성격인 반면, 로마 고대 미술의 진수인 리비아 빌라의 벽화(Frescoes from the Villa of Livia)는 이탈리아 고대 미술의 걸작 중 걸작이다. 월계수·야자나무·오렌지·석류 등의 과실과 꽃이 피고, 새가 기저귀의 사실적인 정원은 자연주의의 반영이다. 고대 로마의 걸작 "리비아 빌라의 벽화" 조각은 그리스 뒤에 있었다. 1867년 리비아 빌라에서 발굴된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63AD 14)를 조각한 프리마 포르타(Augusta of Prima Porta)는 시대의 걸작인 동시에 벽화가 그의 아내였던 리비아 돌실라(Livia Drusilla). 기원전 2세기 후반,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하고 많은 그리스 조각들이 로마로 옮겨졌습니다.

 

그리스 조각의 단정함에 로마의 자연주의 결합한 역작 아우구스투스상 로마 조각은 그리스를 맺고 있지만, 특히 초상화 조각은 단순히 외모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격과 풍모까지 묘사함으로써 각별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 로마의 평화(Pax Romana) 시대를 구현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들어서는 단정적이고 고전적인 양식으로 정리해, 「프라마 포즈타의 아우구스투스상」이나 「아라 파키스(Ara Pacis)」의 돋을새김 같은 작품은 그리스의 조각의 엄격함과 단정. 또한 로마인들은 역사적 사실과 황제의 실적을 기리기 위해 회화성이 높은 고무조의 다이나믹한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그러나 조각은 건축의 일부로 취급되었으므로 도시의 발전과 함께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로마의 자연주의를 완성합니다. 그리스를 포함한 로마 시대 조각의 정수는 이탈리아 로마 테르니미 역 근처의 팔라조 마시모(Palazzo Massimo)와 디오크레티아노 목욕탕(Terme di Diocleziano), 팔라조 알템프스(Palazzo Altemps), 크립타 바르비(Crypta) [출처] : 정준분석기 / 전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6 로마 미술, 프레스코화, 세코, 모자이크 그리고 스케노그래피아, 콘펜디아리아 성격과 풍모까지 묘사한 조각 정원2. . 7 중세의 시작, 비잔틴 미술 데이시스, 이콘, 모자이크, 성상 파괴 운동 그리스, 로마, 동방문화 기독교 미술과 융합

 

한편 리본, 생명나무, 웅양 머리, 날개 달린 동물 등 페르시아나 중앙아시아 미술에서 차용한 모티브도 등장했다. 이로 인해 그림에 대한 숭배와 예배의 유무로 갈등이 생겨 우상파괴운동(Iconoclasm)이 생겼다. 이는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은 유대교, 성상을 부정한 바울로 파도와 정치세력이 가세하기 시작했다. 비잔틴 제국의 레오 3세는 성상 숭배를 금지했지만 로마의 서쪽 교회는 무지한 야만인을 교화하기 위해 성상 숭배는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또 황제가 교회에 간섭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도 더해져 성상 숭배 금지 명령을 무시해 버린다. 이것은 교황과 황제의 세 가지 대결을 의미합니다. 이후 서로 파문을 주장하고 결국 동서교회는 완전히 분열하고 서쪽은 로마 카톨릭교회, 동쪽은 그리스 정교(동방정교)로 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성상파괴주의자들은 하나님은 정신인 반면, 예술은 감각이며, 신적인 것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테오필루스 황제(Theophilus, )가 죽고 나서 무려 100년 이상 끌려온 논쟁은 성상의 수호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성화와 성상은 숭배의 대상이었고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성상 숭배를 둘러싼 100년의 논의 종지부 "숭배 대상이 아니라 예배 대상" 수세기에 걸쳐 흥분성을 거듭한 비잔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이민족과 교류를 통해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13세기에 이르러는 로마보다 서유럽과 교류를 통해 널리 퍼져 동방정교의 교세를 통해 아르메니아 조지아 러시아 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예술가와 장인의 구별이 거의 없었던 것은 단지 종교적인 목적으로 경건함과 하나님을 숭배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름다운 물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13세기 이전에는 작가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에 서명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중세미술의 시작점인 멜로빙어미술은 로마제국령의 건축과 장식 조각, 모자이크, 석관 조각 등 기독교 미술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아시아권 동방의 영향으로 반고전적인 원시양식이 나타나 새롭게 이 지역의 주인이 된 켈트인과 게르만인들은 기독교 미술에 그들의 전통 민족미술을 융합하여 무구, 마구, 복장품 등 공예가 주된 장식미술을 발전시켰다. 이슬람과 싸운 영웅적인 전투를 담은 로랑의 노래의 주인공 샤를루마뉴는 칼로링거 시대 문을 열었다. 그는 수도를 아헨으로 정하고 문화·예술을 장려했다. 샤를르메뉴는 유럽 전역에서 학자와 문인들을 불러 문법·수사·논리 등 3학과 산술·기하·음악·천문 등 4학을 합친 교양 7학과를 성직자와 귀족, 일반인의 자제에 가르쳤다. 물론 시간은 짧아 내용도 고전문화의 형식을 빌려 독창성은 떨어졌지만, 기독교와 고전문화를 융합시켜 중세의 기틀을 굳혔다는 점에서 이때를 칼로링 걸 네상스라고 부른다. 이 시기 미술의 중심은 건축이었다. 특히 종교 건축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매우 적다. 당시의 공간 구성과 기술은 초기 기독교 건축과는 달랐다. 이들은 로마 건축 기술을 받아들인 후에, 게르만 작풍으로 접목했다. 교회 건축의 기본인 정사각형 평면 내부에 2열 또는 4열의 기둥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중앙과 통로로 나눈 바실리카 양식을 선호했다. 돌을 쌓아 주두(Capital)가 있는 원형의 기둥을 사용하는 한편, 목조 건축에 능숙한 게르만의 기술을 융합해, 지붕은 나무로 했다. 북유럽 교회의 상징이 된 종루도 이런 목조 건축술 덕분이다. 칼로링거 시대의 문 얀 샤를 마뉴 로마 건축 게르만 작풍 접목 교회는 중앙 집중형과 선형 양식을 선호했지만, 모두 중요한 변화를 경험한다. 이 시기의 건축물에서 가장 원형에 가까운 것은 프랑크푸르트로부터 약 1시간의 거리에 위치하는 로르슈 수도원이다. 746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십자형 교회의 팔에 해당하는 날개(Transept)가 없는 직사각형 구조의 삼평식이다. 천장은 격자 무늬의 나무를 사용하고 바닥은 대리석 모자이크로 장식하고 소박함과 장식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중앙 집중형 양식의 대표적인 예는 아헨 왕궁 예배당에서 많은 발전과 변화를 보인다. 라벤나의 성 비탈레 대성당의 팔각형 이중 공간과 복층 갤러리를 빌려 새롭게 정리한 대성당은 중세 로마네스크 건축의 기본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특히 게르만의 역학이 반영된 수직 공간과 두꺼운 벽체와 지붕의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는 갈비뼈처럼 구부러진 천장 구조물을 돌로 만든 석조 리브 볼트(Ribbed vault) 천장을 통해 최대 변화를 보인다. 그들은 또한 전시대 건축물의 석재를 제거하고 재사용했지만, 이것을 스포리아(Spolia)라고 한다. 예배 중시 문화 “제기와 신전 아름답게” 성경 각 페이지까지 화려하게 장식 남프랑스와 스페인에 들어간 서쪽 고트족도 비잔틴 제국과 교류하면서 동방 양식을 빌려 석조 아치 구조와 돔을 사용했고, 내부는 호화로운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장식했다. 조각은 남·북 지방이 다르지만, 남 지방은 로마를 계승하고, 고부상 기법을 사용해 신화나 기독교의 상을 만들었다. 북부 지방은 석관과 비석의 표면을 자연주의적인 기법으로 선묘·평창조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예배를 중시한 샤를마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기와 성전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성경의 각 페이지를 아름답게 빛나는 장식하는 일러스트가 특징의 사본 장식을 극채색으로 했다. 커버는 금이나 칠보와 보석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장이 바뀌는 빈 페이지에 지극히 기하학적이고 장식적인 그림을 그려 넣었지만, 이것을 카펫 페이지라고 한다. 게르만, 켈트의 전통은 금속 공예품에 더욱 현저하게 나타나, 상아 조각도 유행했다. 이후 멜로빙어 왕조는 프랑스 문화, 칼로링거 왕조는 독일 문화를 만들었지만 뿌리는 동일하다는 점에서 지금의 앙스크 관계는 아이러니하다. [출처] : 정준분석기 / 전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8. 중세의 시작, 로마네스크 이전의 미술 이클란, 바실리카 스타일, 인슐라 미술, 리브볼트, 일러스트, 스포리아 중세 천년,

 

9 로마네스크 미술 인간을 압도하는 장대한 돌 건축 전성기 : 봉건제, 영주, 레헨, 교차궁릉, 대학, 틀의 법칙, 스크립트리움

 

1130년대에 완성된 부르고뉴의 베즐레 수도원 입구의 돋을새김.

 

글로스터 촛대. 12세기 영국 VA 미술관 소장.

 

특히 슈파이어 대성당은 건축물 전체가 하나의 통일체로 총체적인 조형미를 갖춘 건축물로 완성되어 로마네스크 건축의 정점이 되었다. 맨프레드 분드럼과 같은 이것은 "이후 지금까지 없었다"는 말로 이 시기 건축을 격찬했다. 중세의 중심 수도원 건축 두꺼운 벽, 둥근 아치 음향 효과 탁월 로마네스크의 건축물은 농촌지역에 장원을 중심으로 활발히 지어진 수도원 대성당에 적용되었다. 로마의 영향으로 둥근 아치형 천장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이것을 견디기 위해서는 벽도 두껍고 웅장해야했습니다.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창문도 커서는 안 되었다. 그러므로 내부는 항상 어두워졌지만, 이것은 오히려 교회 안을 엄숙하게 만들었습니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또 다른 힘은 수차와 풍차 등 새로운 동력 기술의 발달로 높아진 농업 생산성에서 나왔다. 이에 따라 잉여농산물이 시장에 나와 수공업도 발달해 상업이 융성되어 상공업자의 동업자 조합인 길드(Guild)가 태어나 재정적으로 교회 등 대형 건축을 지지했다. 기독교 성지 회복을 위해 결행한 십자군 원정(Crusade, )은 의학·과학·법학 등 새로운 지식의 유입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학생과 교사 조합 형태의 대학(University)이 나타났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1088), 살레르노 대학(1231), 파리 대학(1109), 옥스포드(1167), 케임브리지(1209) 등이 그것이다. 이 시기 수도원은 문화의 산실이며 예술의 생산기지로 건축과 함께 특히 조각과 금속공예, 상아조각이 이뤄졌다. 조각은 독립이 아니며 건축의 일부로 회화적이었고 성경 내용을 주제로 취급했습니다. 건축물의 기둥 위에 동물을 한 쌍씩 대칭적으로 조각하고 균형을 잡았지만 조각은 틀의 법칙(Portion)에 의해 오랫동안 늘어나거나 춤추듯이 광대의 모습처럼 구부러져 건축물의 형태 속에 위치했다. 이러한 로마네스크 특유의 변형에 의해, 건축의 틀 중에서도 격렬하고 역동적인 생명감을 표현했다. 또 건축물 문에 성경 내용과 그리스도의 일생 등 교리를 묘사했다.

 

또한 자연의 일부는 추상적이고 왜곡된 형태의 환상적인 이미지로 자유롭게 변주하고, 초월적인 신의 세계를 그려, 화려한 원색으로 채색된 십자가상이 제작되었다. 또 이 시기부터 기독교 전통인 지혜의 자리라는 의미의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자상이 나타났다. 이때 성모는 인류의 구원으로서 항상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문화산실에서 예술생산기지 수도원 조각·금속 공예·상아 조각도 많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건축 벽은 그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베네딕트회는 물론, 910년 베네딕트회 혁신을 위해 결성된 클루니회 등 많은 수도회는 벽면을 성상화로 장식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현존하는 그림을 보면 조각처럼 건축의 형태로 그려졌지만 성경 내용과 성도의 도덕적 삶이 주제였습니다. 그들은 깊고 넓은 신앙의 표현 수단으로 그림을 그렸고 인간의 몸의 아름다움보다 영적이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훈적인 내용이 주님을 이루고 “문맹자를 위한 성경”의 역할을 확실히 하였다. 양식적으로는 이콘화를 대표하는 데이시스(Deesis)의 양식이 주로 사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좌우로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 그리고 대천사와 성인들이 인류의 구원을 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따라서 이 도상에는 간청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재료는 계란, 질, 꿀, 무화과의 수액 등을 안료와 섞어 페인트를 만들어 그림을 그린 템페라(Tempera)가 사용되었다. 특히 강한 터치와 착색은 ​​표현주의적인 왜곡과 양식화를 통해 오늘날의 표현주의와 비슷합니다. 어쨌든 이 시대 미술에 나타나는 인물은 모두 초현실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스테인드 글라스로 성상을 표현하는 예도 많아, 필사본의 일러스트가 대부분 수도원의 카피 제작소에서 제작되어 중세 전기의 전통을 이어갔다. [출처] : 정준분석기 / 전국립 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9 로마네스크 미술: 봉건제, 영주, 레헨, 교차궁 타카, 대학, 틀 법칙, 스크립트리움 인간을 압도하는 장대한 두 사람. 20.

 

10. 고딕 미술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첨탑과 화려한 빛의 예술 : 수태고지, 성직매매, 아비뇽 유수, 카노사의 굴욕, 스콜라 철학, 공중부벽, 팀파눔, 고딕적 미소 1315세기 고딕 미술의 중심은 신앙 벽돌을 사용하여 길쭉한 기둥을 세워 스테인드 글라스로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 조각, 그림, 창문에 성경 내용을 담은 장식 성경의 대중화 이전 문맹자에 대한 믿음의 전파 국내에서는 명동성당이 대표적인 고딕 양식

 

라 산토 샤펠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고딕 건축의 백미 인 영국 런던의 캔터베리 대성당.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벽입니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팀 Fanum.

 

부르고뉴 마리아와 성모자 동상.

 

그러나 이후 교회의 방종으로 이어지며, 이에 토마스 아키나스에 의해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성적 사유를 통해 논증하려고 한 스콜라 철학이 발달하여 중세 도시의 발달로 이어져 르네상스를 지상 대성당은 종교의 중심이며 교육과 교류의 장소 고딕 작풍 건축술은 모두에 우선한다. 첨탑과 첨탑, 기괴하고 불필요한 장식이 지나치게 나타나는 건축은 디자인으로 비율과 대칭성을 중시하고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를 교회를 통해 구현함으로써 하늘 위의 천국을 지상에 재현하려 했다. 화려한 빛으로 채워진 천사들의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대성당에서 스테인드 글라스는 벽화를 대체하는 성령의 빛으로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비유였고 창문은 고딕 시대의 신학 교재였다. 대성당은 종교의 중심이었고 교육과 교류의 장소였습니다.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과 대기근, 크고 작은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종교 재판으로 마녀 사냥이 이룬 무지·야만·환상·폭력의 시대이지만, 고딕은 빛의 시대이며, 한편으로는 근대적 계몽의 씨가 발아했다는 점에서 고딕 건축은 벽돌을 주로 사용하여 첨탑을 세워 수직적인 느낌을 준다. 고기의 벽과 기둥을 버리고, 길쭉한 기둥과 넓은 창문을 만들지 않은 빛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가게 했다. 따라서 신비하고 경건하다. 이러한 건축은 새로운 첨두 아치(Pointed arch)와 늑골궁 융(Ribbed Vault), 공중부 벽(Flying Buttress)이라는 외부 지주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늑골궁 다카시는 천장의 무게를 분산시켰고, 벽은 부벽을 만들어 다른 전벽에 지지하면서 건축물을 높일 수 있었다. 특히 완공된 샌드니 대성당은 새로운 건축물로서 높은 천장과 가볍게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기둥, 섬세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매료시켰다. 이러한 건축물은 도시화가 이뤄진 이 시대 각 도시의 자부심이 되어 도시마다 서로 싸우도록 크고 높은 대성당을 세우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높이가 51m에 달하는 보베 대성당도 건설됐다. 그러나 기술 부족으로 12년 만에 강풍으로 지붕이 가라앉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고딕 대성당의 내부는 매우 밝고 경쾌하며 돌 천장의 음향 효과는 장엄함과 신성함을 느낍니다. 또한 대성당을 장식하는 사실적인 조각은 건축에 독립적인 존재로 르네상스를 예고하고 있다. 고딕 미술의 중심, 건축 12세기 스콜라 철학을 바탕으로 각각의 단위 조각이 질서와 조화를 통해 대성당의 전체상을 파괴하지 않는 한 각각 독립성을 구가했다. 성경 내용을 담은 동상은 대성당 정면, 입구, 입구 상부에 있는 팀파눔(Tympanum) 등으로 장식됐다. 특히 등장인물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정리되어 알기 쉽게 만들어졌다. 기둥의 상단 부분은 서서히 사라지고 식물과 간단한 기하학적 장식으로 바뀝니다. 또 민속신앙에 근거한 가고일(Gargoyle) 등 괴수도 등장하지만 오랫동안 가는 기둥에 새겨진 인물상은 흥미로운 존재다. 특히 샤르트르 대성당은 4000여 점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특히 왕의 문이라 불리는 대성당의 정문 조각은 시대의 백미다. 이 시대의 인물상에서 나타나는 고딕적인 웃는 얼굴도 특징이지만, 입술의 첨단이 오르고 웃는 얼굴을 두는 뿐만 아니라, 양눈이 좁아져, 눈썹 아래 눈꺼풀이 오기 때문에 웃는 모습이 특징이다. 또, 전체적으로 리얼한 묘사 기술을 좋아했다. 너무 현실적인 관계로 장식성을 잃은 것은 유감입니다. 회화는 여전히 사본 장식이 주종을 이뤘지만, 기도서는 고딕 시대의 사치품이며 신앙의 징후였다. 플랑드르 지방에서 만들어진 부르고뉴의 마리아(1477)라는 사본은 고딕 대성당의 아름다움과 믿음의 힘을 보여주는 놀라운 묘사가 아름답을 정도는 아니다. 그 후 고딕 양식은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국제적인 고딕 양식으로 전개되어 시대를 넘어 존재하는 하나의 양식이 된다. 서울의 성공회 서울대주교좌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며, 명동성당은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 로마네스크나 고딕이라는 용어는 그 시대의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나중에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로마네스크가 독일에서 시작되면 고딕(Gothic)은 프랑스, ​​그것도 파리에서 시작해도 잘못된 말이 아니다. 그리고 영국에 이어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이 두 양식의 중심에는 건축이 있었고 처음에는 양식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출처] : 정준모큐레이터/전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10. 고딕미술수태고지, 성직매매, 아비뇽 유수, 카노사의 굴욕, 스콜라 철학 아름다운 빛의 예술/국방. 27. [출처]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Ⅰ①원시미술, ②메소포타미아, ③이집트, ④그리스, ⑤헬레니즘, ⑥로마, ⑦비잔틴, ⑧로나네스크 이전, ⑨로마네스크, ⑩고딕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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